The Republic of Korea

2020 HIRA International Symposium and Training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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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다시 품는 꿈.

  “조심히 다녀와요. 마스크 쓰는 거 잊지 말고, 손소독제 있죠? 수시로 손 닦 는 것도 잊지 말고, 참…….“ “알았어요. 알았어. 다녀오리다.” 아내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는 미리 대답을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머쓱해하는 아내의 웃음에 가슴이 뻐근해져온다.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해진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지방근무 발령으로 여기저기 돌아도 별 말이 없었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나에게 맞추느라 드러내기 보다는 속으로 삼키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전폭적인 이해로 품어주고, 경제적으로 힘이 되고 싶다며 10여 년간 이불가게를 하며 나에게 지원군이 되어주고. 그리고 지금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로 함께 하며 안정적인 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밖으로 나서자 투명한 햇살에 눈이 시려웠고 가을 낮의 열기는 몸으로 스며들어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거기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으니 가빠지는 숨만큼 답답해졌다. 그래도 좋다. 오늘은 일을 위해 나서는 출근길이기 때문이다. 전철에 올라 비어있는 자리에 몸을 맡긴 후에야 숨을 고를 수 있었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오늘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갔다. 7년 전, 나는 폴리텍 대학교에 입학했다. 1년 과정으로 나라에서 학비를 대주기 때문에 달리 들어가는 돈이 없다는 특혜를 다행이라 여기며 보석을 가공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1년 동안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었다. 쉰다섯의 나이에 신입생으로. 처음 그 소식을 전했을 때 아내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은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고지식하고 계획적인 성격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한 후, 퇴사할 때까지 한 눈 한 번 팔지 않았다. 정년을 앞두고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로 하는 수순인 지방발령으로 대전에서 광주로, 그러다가 권고사직에 가까운 권유에 힘들어 사표를 내고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에 회계분야를 담당하는 이사로 1년 정도 근무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꿈을 조심스럽게 꺼내보았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부를 택했다. 그렇다고 가진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아내가 자그마한 이불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생활을 책임질 정도의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회사로부터 되돌아오는 배신감과 허탈감, 돈을 벌기 위해 친구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 모든 것들이 죽기보다 힘들어 술잔을 비우는 것으로 털어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슬며시 꺼내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미술시간을 좋아했고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도 많이 받아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집안의 맏이로, 종손으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은근한 압력은 꿈을 꺼내놓지 못하게 했고 결국은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직장생활도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몰리듯 직장을 떠나게 되자 당장의 생활이 막연해 답답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폴리텍 대학이었다. 어쩌면 나는 불안한 미래를 새롭게 열기 위해 잠시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식뻘 되는 아이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고 가며 그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꿈을 조심스럽게 펼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은 물론 모두를 위한 행복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년 과정을 끝내고 찾게 된 곳이 바로 종로에 있는 공방이었다. 그 후로 나는 종로 3가에 있는 공방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세공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곳에서 장인이라 불리는 스승님으로부터 실전을 익히고, 4년 전부터는 내 손으로 디자인한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판로는 아내의 역할이 컸다. 그 때만해도 아내는 이불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한 쪽에 작은 진열장을 만들어 그 곳에 내가 완성한 은세공품을 넣고 판매하고 있었다. 이 또한 아내의 제안으로 하게 되었는데 결과도 꽤 좋았다. 무뚝뚝한 나와는 달리 웃음도 밝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내는 이불가게를 동네 사랑방으로 만들었고 단골손님도 꽤 많아 그 몫을 톡톡히 담당해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공방에 매일 출근하는 것은 물론 공방에서 함께 하는 젊은이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며 막연하기만 했던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 뿐인가? 작년 봄부터는 내가 만든 세공품들을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판매하게 되는 특별한 즐거움도 맛볼 수 있었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이제 선생님 실력을 세상이 알아주는 거네요,” “한 턱 내셔야 해요. 점점 바빠지시겠어요. 후후…….” 지금도 기억난다. 공방에 있는 젊은이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을 때의 벅찬 울림이…….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만의 공방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때가. 그 꿈은 아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작년 가을에 아내는 대장암 초기로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완치는 되었지만 아직도 걱정이 앞선다. 물론 이불가게도 그만두었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우리의 공방에서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적금도 새로 들어 착실하게 유지해왔다. 집에서 종로3가까지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거의 두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나는 그 곳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었고, 제2의 삶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으로 보낼 수 있었으며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한 든든함으로 늘 즐거웠다. 올 해 초, 느닷없이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이 모든 것들을 되돌려 놓았다. 다른 무엇보다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어 처음 한동안은 바깥출입을 아예 하지 않았고 공방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들리는 게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19는 당장의 삶과 죽음이라는 불안함으로 모든 것들을 정지시켜 버렸고 그 외의 것들은 당연히 감내해야 했다. 다양함으로 늘 분주했던 공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말이면 프리마켓을 찾아다니던 은석군은 온라인 마켓으로 눈을 돌리고, 낮에는 회사원으로 저녁이면 공방에서 일하며 투잡을 뛰던 성은양은 무급휴가라며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느라 바쁜 눈치이고, 그러다보니 어쩌다 얼굴을 마주해도 예전처럼 파이팅 넘치는 기운이 없어 안타까워진다. 나 역시 코로나 19로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다. 주변을 통한 판매와 인사동 갤러리에서 판매를 위한 제품을 만드느라 밤늦게까지 공방에서 머무르는 게 일상이었는데 올해는 모임도 힘들고 인사동 거리도 한적해지는 바람에 그저 손을 놓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을 되내이며 봄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다림은 지속되고 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쓴 마스크는 조금만 걸으면 숨이 답답해져 불편하지만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꼭 쓰고 있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작은 손세정제를 담고 다니며 수시로 소독하고, 공방에 들어서면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덕분에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모두의 건강을 위해 지켜야할 수칙이다. 이렇게 불안한 날을 보내며 대화를 통해 마음을 풀어낸다. 코로나19로 힘듦이 당연해지는 요즘, 가장으로서 어깨가 더 무겁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도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을 힘듦을 가슴에 품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인 힘듦을 공방에서 일하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하며 기운을 얻는다. 봄이면, 짧은 봄이 사라질 때쯤이면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19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그 끝이 막연하다. 다행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거의 반 년 동안은 일이 없어 생활을 위해 적금을 해약하는 씁쓸함을 맛보았지만 그래도 좋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매일 아파트 뒤에 있는 야트마한 산을 오르내리며 몸은 물론 마음까지 건강해질 수 있어서. “이천에 있는 수영언니가 동창회에서 모임 대신 선물하기로 했는데 당신이 만든 은반지로 정했대요. 그리고 경희도 모임에서 기념반지를 맞춘다고 하기에 주말에 잠깐 만나기로 했어요. 공방에 가면 새로운 샘플도 챙겨 와요.“ 이번에도 역시 아내의 수더분한 웃음 덕분이다. 이번 코로나19로 나만의, 우리의 공방은 멀어졌지만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힘듦을 이겨내는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지금까지 있는 힘을 다해 버티어온 것처럼 조금만 더 힘을 낸다면 반드시 예전처럼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함께 하기로 다짐해본다. 채우고 보태고, 나누며 함께 하는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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